[스위스에서 #3.0] 집 구하기 전에: 스위스에서 집구하기 어려운 이유

2022. 9. 26. 08:09스위스 정착기록

돌이켜보면, 스위스 정착하기의 가장 큰 허들은 렌트 구하기였다. 앞서 언급한걸 다시한번 짧게 요약하자면, 

  • 스위스는 렌트 구하는게 어렵다. 
  • 입국/도착하기 전에 자력으로 미리 집을 구하는건 매우매우 불가능하다. 
  • 그래서 임시거주지를 미리 정해놓고 와야한다. 

그럼 왜 이렇게 렌트 구하는게 어려울까? 이래저래 집을 구하러 뛰어다니면서 겪은 일들과 주위에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이유는, 낮은 공급 + 높은 수요.

공급으로 치자면,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가를 가진 나라, 자그만한 땅덩이를 가진 나라 (스위스 영토는 우리나라의 40% 수준이다), 산이 국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 (어라 이건 어디서 들어본듯한데) 등등... 주택 공급이 부족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근데 수요가 꾸준하다. 스위스는 '대도시'라고 불리울만한 하나의 압도적인 큰 도시는 없다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는 취리히, 수도는 베른인데 둘 다 인구가 40만, 13만명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 100만명은 넘어야 도시 취급을 해주는데...). 그렇지만 각 주요 도시마다 특색이 분명하고 좋은 직장들이 많다. 예를 들어 취리히는 각종 은행업 (UBS, Credit Suisse 등등)의 고용수요가 있는데다 구글 오피스가 있어서 고급 외부인력 유입이 꾸준하다. 로잔이나 제네바도 국제기구들이 많아 높은 수준의 일자리를 찾아 몰려오는 수요가 높다. 그리고 취리히나 로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과대학도 있다. 

 

두번째는,  스위스의 특이한 주택정책.

스위스는 주택 소유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고 비싸며 흔치 않다. 여기서 오래 산 사람들이나 스위스 사람들도 자가가 아니라 여전히 렌트를 하며 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내 보스는 두 자녀가 있는 4인 가족의 중년 가장인데도 집이 렌트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이게 여기서는 굉장히 흔하고 평범한 케이스였다. 구글 says, 스위스의 자가 보유율은 40% 수준으로, 전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낮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이건 미국과 정 반대되는 노선이라 굉장히 흥미로웠다. 미국에서는 다운페이먼트라고 전체 집값의 일부 (State나 도시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10-30% 정도)만 가지고도 내 이름의 자가를 살수있고, 나머지는 모기지로 차차 은행에 갚아나갈수 있다. 따라서 삶의 안정을 찾아 가정을 꾸리려는 젊은 사람들은 이런식으로 집장만을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자가 소유에 대한 열망이 크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서브프라임모기지가 터졌던 거겠지. 

하지만 스위스는 주택 소유에 대한 세금이 굉장히 높다. 그 말인즉, 국가 단위에서 개인의 주택 소유를 장려하지 않는다는 것. 사람들도 크게 집을 사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편도 아니다. 따라서 렌트 전쟁에 뛰어든 사람이 일부의 사회초년생이 아니라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인 것이다. 

 

내 몸 뉘일 곳 하나 찾기가 이리 어렵다니

 

세번째 이유는 아마 일부의 외국인에게만 해당될 듯 하지만, 집의 명의를 유지해 영주권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수요도 한몫 하는것같다. 유럽의 많은 여타 나라들처럼, 스위스도 일정 기간을 경제활동을 하며 거주한 외국인은 영주권 (permanent residency)을 신청할 수 있다. 근데 프랑스나 영국은 3년 정도인데 반해 스위스는 10년이나(!) 거주해야 한다. 최근에 코로나를 거치며 조금 짧아졌다고 들었는데 파격적으로 할인(?)해 줬을거 같지는 않다. 

게다가 스위스는 연방국가(Confederate)이기 때문에 한 칸톤에서만 10년을 살아야 유효한 카운트가 된다. 즉, 스위스에서 도합 10년을 살았어도 로잔에서 5년 취리히에서 5년을 살았으면, 취리히에서 마저 5년을 더 살아야 자격 조건에 부합하게 된다. 이러다보니 영구 정착 목적이 있는 외국인들이 하필 직장을 옮겨 다른 칸톤으로 가야 할 때, 기존의 거주지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게 서브리스를 주거나 단기 렌트를 놓기도 하지만 종종 비워놓기도 한다고 들었다. 또한 집을 구하는 과정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집을 내려놓기가 아쉬워, 단기적으로 다른 칸톤에 가거나 외국에 이주하는 경우에도 집을 내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앞선 세가지 이유가 양적인 이유였다면, 네번째 이유는 스위스 부동산 계약의 특수성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집을 보러 다닌 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으면 부동산 중개인에게 의사표시를 한다. 그러면 중개인은 임대인을 불러 계약서를 작성하고 보증금을 확인하고 중개수수료를 치르면 끝이다.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 집을 보러 다닌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리싱오피스에서 계약서를 쓰고, 이따금씩 (렌트가 내 급여의 1/3 미만이라는) 수입증명을 요구하면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끝이었다. 임대인은 마음에 든다, 렌트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라고 말하는 임차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는 집주인이 갑이다. 아주아주 파워 갑이다. 얼마나 갑이냐 하면, 무수히 많은 임차인들(aka 프로듀스 101 연습생)은 각종 서류를 정성스럽게 엮은 dossier를 내밀며 (aka 픽미픽미 춤을 추며) 집주인에게 나를 꼭 뽑아달라고 어필을 해야한다. 즉, 집주인 또는 부동산 중개인은 일정 기간동안 뷰잉을 진행하고 미래의 임차인에게 지원서를 가득 받은 다음 거기서 맘에 드는 사람을 픽한다. 마음에 드는(?) 지원자가 없으면 뷰잉을 다시 열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후 포스팅에서 이 부분을 찬찬히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런 특수한 종류의 부동산 계약 과정이 렌트를 구하는 과정을 더 고달프게 한다. 돈을 내겠다고 해도 가질 수 있는게 아니라니~~ 

간혹 어떤 집주인들은 외국인을 대놓고 비선호한다. 예를 들면, 이름이 외국인같으면 아예 뷰잉에 초대를 안한다. 외국인들은 오래 살지 않고 금방금방 떠난다는 점, 그러면 집주인에게도 귀찮은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점, 그리고 혹여 문제가 생겼을 때 (수리 등)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는 점 등을 들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도 집을 구하러 다닐때 아주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에 괜찮은 가격의 매물을 보고 연락을 했었는데 뷰잉 메세지를 대차게 씹혔다. 근데 이게 흔한 일이고 나만 겪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무브온 하고 다음 집을 찾으면 된다.

직장 구하는것처럼, 인생의 짝꿍 구하는 것처럼, 스위스에서 집구하기란, 서로가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연결되는 아주 귀한 인연인 것을... 또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