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젯 캔슬 시 대처방법 (feat. 그리스)
지난 주 그리스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왔다. 원래 토요일~그다음토요일로 깔끔한 일주일 일정이었는데...
돌아오기로 한 그 토요일 아침, 씻고 나와 짐을 싸고 있는데 창밖으로 뭔가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뭔가 하고 창밖을 내다봤더니 열대성 스콜처럼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전날까지 쨍하고 맑다가 갑자기 비라니. 그럼에도 유럽스타일 비(?)처럼 잠깐 내리다 그치겠지 싶었는데... 체크아웃 시간이 다되도록 비가 멎을 기미가 안보였다. 어쩔수없이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로 나왔는데...
학회 끝나자 마자 좀 관광을 할까 할때 비라니. 저녁시간 비행기까지 느긋하게 마을구경을 할까 했는데 물건너갔다 싶었다. 어쩔수없이 호텔 로비 카페에서 시간을 좀 때웠다. 비가 어찌나 무지막지하게 오던지, 호텔 내 조명이 자주 깜빡였다. 오후 2-3시정도가 되니 좀 비가 수그러들길래 바람막이를 챙겨입고 원래 가려고 했던 브런치 가게에 갔다. 근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ㅎㅎ 전기가 나가서 커피도 안되고 식사도 안되고 그냥 소프트 드링크만 된단다. 아아 비가 아직 멎지 않아서 그냥 앉아서 스프라이트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곤 더이상 허기를 참을 수 없어서 점심도 저녁도 아닌 이상한 시간이지만 식당으로 갔다. 시간도 이상하고 비도 와서 그런지 손님은 나뿐. 양고기와 그릭 샐러드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이지젯 앱에서 푸시 알림이 왔다.
비행기가 캔슬됐다...!
아아아아..... 일단 보스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상황을 알린 뒤 앱 메시지를 자세히 읽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가 캔슬되었고, 나는 리스케줄(rerouting)이나 리펀드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안내되었다. 리스케줄을 했을때 가장 빠른 비행기는 3일 뒤. 그리스가 10월은 비성수기라 비행편이 드물다. 이마저도 11월이면 대부분의 LCC항공사는 운항편이 없다. 그냥 빨리 집으로 가고싶어서 다른 항공사를 찾아봤더니 무지막지하게 비싸고, 페리를 타고 아테네에 간다고 해도 달리 더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냥 앱으로 리스케줄 신청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캔슬 연락을 받았다는것...?
당장 할 일은 그날 묵을 호텔 예약. 이지젯 상담사와 통화를 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이 지역에 비행편이 많이 캔슬되는 바람에, 호텔은 내가 알아서 예약한 뒤 나중에 환급신청을 하라고 안내받았다. 테이블 위로 맛있어보이는 샐러드와 양고기가 서빙되는데 식욕은 싹 없어지고, 길거리에 나앉을까봐 가슴이 쿵쾅댔다 (설마). 당장 호텔스닷컴 앱을 켜서 오늘 날짜로 검색을 하니 시내에 예약 가능한 호텔이 단 두개가 보였다. 일단 오늘은 아무데서나 자고 그다음날 상태가 괜찮은 호텔로 옮기자 마음먹었다.
내 이지젯 비행기가 캔슬됐다는걸 알게 되면 당장 해야할일 -- 플라잇트랙커 확인하기!
https://www.easyjet.com/en/flight-tracker
easyJet.com | Flight Tracker
Important All flights are shown in local time. Check-in, bag drop & boarding gate opening and closing times are unaffected by delays.
www.easyjet.com
내가 비행기 캔슬을 알게 된건 이지젯 앱 푸시 덕분이었지만, 앱은 아주 자세한 안내사항이 빠져있었고 리스케줄/리펀드 결정을 한 뒤 자세한 상황은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라고 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상담을 했던건데, 나중에 보니 웹사이트에 플라잇트랙커라는 탭이 있다는걸 알게됐다. 이걸 먼저 알았더라면 사실 전화를 안했어도 됐다.
여기에는 비행기가 왜 캔슬됐는지, 그리고 승객들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주아주 자세하게 안내해준다. 예를 들어 호텔은 항공사에서 지정해주는지 아니면 고객들이 알아서 예약을 해야 하는지 등.
그리고 또 확인할 점은 내 비행기가 왜 캔슬됐는지인데, 이 이유에 따라 보상범위 항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캔슬된걸 알았다면 데스크에 물어보면 되지만 아닌 경우라면 이 플라잇트래커를 확인하면 된다.
여기서 잠깐. 유럽 내 항공사는 EU 261이라는 규정을 따른다. 이는 유럽 내 항공편을 이용하는 승객의 편의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규정으로 2005년부터 시행되었다. 승객들은 항공사의 오버부킹overbooked, 지연delay, 항공편취소cancellation로 인해 피해를 본 경우, 1) 보상 Right to compensation, 2) 환급 또는 항공편 재조정 Right to reimbursement or re-routing, 3) 서비스 Right to care를 주장할 수 있다.
1) Right to compensation는 위 항목으로 불편을 겪은 승객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해당경우가 좀 좁다. 항공사 파업이나 기기결함 등은 인정되지만, 나처럼 기상악화는 이 항목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비행편 2주 전에 캔슬된 경우도 해당사항이 아니다. 근데 이 항목은 지연delay에도 해당이 되기 때문에 지연 정도에 따라서 일정 부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항공편이 2시간 이상 연착되었다면 이 항목을 잘 살펴보면 꽁돈이 생길 것이다. 2) 내가 무료로 비행기 리스케줄을 할 수 있었던건 Right to reimbursement or re-routing 항목 덕분이다. 항공편이 캔슬된 상황에서 리스케줄은 당연히 무료로 해줘야하는거 아니냐 할수 있겠지만... 저가항공사LCC는 상식적인 서비스를 기대하면 안되기에 ㅎㅎ 3)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Right to care. 이 항목에 따라 나는 리스케줄된 비행편을 기다리는 동안의 a) 호텔 및 교통편, b) 식사 및 음료, c) 기타 통신비를 환급받을 수 있다. 고객센터와 전화를 할 때 상담사분이 호텔은 2-3성급만, 그리고 음료는 알콜은 제외라고 하셨다. 내가 최대치 cap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캡은 없고 상식적인 수준의 reasonable한 수준으로만 맞춰달라고 하셨다. 이때 각각의 항목이 적힌 영수증 (itemized receipt)은 꼭 챙겨야 한다. 퉁쳐서 최종금액만 적힌 영수증이나 카드사 거래내역은 영수증 역할을 하지 못한다.
더 자세한 정보는 아래 두 링크 참조
https://www.easyjet.com/en/terms-and-conditions/notice-of-rights-for-flight-delays-and-cancellations
Notice of your rights in case of flight delays, cancellations and denied boarding | easyJet
This notice contains important information about your rights established by European regulation (EC) No.261/2004 / the Air Passenger Rights and Air Travel Organisers’ Licencing (Amendment) (EU Exit) Regulations 2019, and applies to you if: You have a con
www.easyjet.com
https://www.milemoa.com/eu261/
유럽 여행 필수 상식: EU261, 항공편 캔슬, 딜레이가 두렵지 않다! – MileMoa.com
요즘 항공 여행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 다들 경험하고 계시죠? 시장통 같은 공항 검색대 통과도 곤욕이고, 여기저기 내야하는 수수료 하며, 갈수록 좁아지는 이코노미 좌석 상황하며. 자유, 해
www.milemoa.com
리스케줄된 일정에 맞춰 공항에 가는 그날 오후까지도 나는 혹시나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근심걱정으로 가득했다. 이때 좀 도움이 되었던건 플라잇레이더24. 앱도 있고 웹사이트도 있다.
여기서 내 관심 공항을 선택하고 현재 비행 스케줄을 확인할 수 있다. 공항 상황이 원래 예정된 비행시간을 얼마나 잘 맞추고 있는지, 연착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자주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공항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https://www.flightradar24.com/data/airports/her/departures
Live Flight Tracker - Real-Time Flight Tracker Map | Flightradar24
The world’s most popular flight tracker. Track planes in real-time on our flight tracker map and get up-to-date flight status & airport information.
www.flightradar24.com
내 비행기가 캔슬된 날 이 앱을 켜서 봤는데, 캔슬된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엄청 많은 비행편들이 최소 2시간부터 최대 5-6시간까지 연착이 된걸 알았다. 그리스는 공항 시설이 별로 안좋기로 유명한데, 그렇게 열악한 곳에서 많은 승객들이 언제 뜰지도 모르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짐작하니 이지젯의 빠른 캔슬(?!)이 오히려 현명한 처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집에 돌아와 이지젯 웹사이트에서 Make a Claim 양식을 작성했는데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호텔은 호텔스닷컴 영수증, 그리고 식사는 현지에서 받아온 영수증을 찍어서 업로드했다. 이 밖에 입력할 건 내 은행계좌정보인데, 유럽 내 계좌가 있다면 다 알고있을법한 정보였다. 이렇게 작성을 다 끝내고 나니 이메일과 문자로 각각 컨펌 메시지가 도착했다. 최대 28일이 걸린다고 하니 묻어놓고 기다려봐야지.
https://www.easyjet.com/en/claim/welfare
Compensation Claim Form
www.easyjet.com
학교로 돌아오니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그리스 억류(?)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실 뉴스에도 크게 났다고 한다. 이날 하루동안 크레타 섬에 4개월치 강수량이 내렸다고 하니, 얼마나 비일상적인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https://www.reuters.com/world/europe/one-dead-flash-floods-greek-island-crete-2022-10-15/
One dead in flash floods on the Greek island of Crete
A man died and a woman was missing after their car was carried away in flash floods which hit the north coast of the Greek island of Crete on Saturday, Greek authorities said.
www.reuters.com
이렇게 또 좌충우돌 여행 기록이 쌓였네.
안전히 집에 돌아와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