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클래식 공연] 영국 에든버러 조성진 피아노 협연 (2022년 8월)

하트노트 2022. 9. 28. 06:27

유럽에 취직한 첫 해의 여름 휴가로 나는 영국에서 2.5주를 보냈다. 그리고 이 계획은, 휴가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숙원이었던 두가지 숙제의 성격이 강했는데, 하나는 10여년 전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불발된 '오만과 편견 촬영지 답사'였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 유학할때 사귄 중국인 친구에게 강력추천받았던 에든버러 여행이었다. 이 휴가에 대한 기록은 차차 써보도록 하고... 

 

 

나는 에든버러를 여행의 중간즈음으로 배치하고 4일이라는 시간을 보내도록 계획했다. 그러면서 에어비앤비를 알아보다가, 내가 계획한 기간 중 에든버러 숙박 가격이 런던 뺨을 치다못해 더 높다는걸 발견했다. 곧 그 이유를 알게되었는데, 1) 7-8월의 스코틀랜드는 날씨가 선선해서 유럽대륙의 폭염을 피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연중 최고의 성수기라는 점, 그리고 2) 8월초부터 에든버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큰 행사가 여럿 열린다는 점이다. 

 

그 행사라 함은, 첫번째는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계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행사로 퍼포먼스, 댄스, 스탠드업 코미디, 마술쇼 등 각종 행사가 에든버러 전역의 공연장 그리고 거리에서 열린다. 

두번째는 에든버러 타투. 몸에 새기는 문신 타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이 행사의 본 이름은 밀리터리 타투로, 에든버러 군악대를 비롯해 전 세계의 각종 군악 퍼포먼스가 에든버러 성에서 열린다. 

마지막으로,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름만 들어서는 뭐하는 행사인가 싶은데, 프린지가 좀 더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라면 이 페스티벌은 좀더 high-brow 행사로 클래식 음악, 무용 등이 주가 되는 행사이다. 

이렇게 유명하고도 큰 행사가 여럿 열리다 보니 8월초의 에든버러 숙박비는 아주... 미쳤어요... 이런 행사가 있는지 몰랐던 나는 결국 에든버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리스Leith 라는 지역에 에어비앤비를 구했다. 

 

 

그 다음 나는 기왕 이렇게 된거 근사한 공연이나 하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프린지 페스티벌과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뒤지기 시작했다. 원래 뮤지컬이나 스탠드업 등보다는 클래식 공연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마음이 기울어 일정을 아주 꼼꼼히 정독했는데, 그러다 놀랍게도 조성진의 피아노 공연이 내가 딱 머무는 동안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근대는 마음을 다잡고 티켓구매 버튼을 누르니 다행히도 자리가 꽤 남아있었고, 1층 중간좌석의 중간정도 자리였는데 (이정도면 보통 R석 수준인거같은데) 52파운드였다.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티켓을 구매한 뒤 프로그램을 보니 (조성진 공연은 선-구매 후-프로그램확인 ㅎㅎ) 1부에 조성진 피아노 협연, 2부는 일반 심포니곡로 구성되어있었고, 조성진 협연은 무려 베토벤 황제!! 지휘자 정명훈과 협연으로 유명했던 조성진의 황제를 직접 볼 생각을 하니 비싼값으로 에든버러에 머무는 비용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2022년 8월 7일 일요일 오후 7시 30분.

공연장은 에든버러 중심가에 위치한 Usher Hall이었다. 오전에 에든버러 도보구경을 나섰던 나는, 공연장에 일찍 도착해서 화장실도 가고 신발을 운동화에서 구두로 바꿔신었다. 몸가짐 마음가짐 준비ㅎㅎ  

그동안 해가 쨍하다 이날은 아주 스코틀랜드스러운 날씨였다

 

공연장은 여타 다른 클래식 공연답게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는데, 조성진 공연답게 한국인같아보이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관객석 들어가기 전 복도에 걸린 공연 정보를 한번 찍어봤다. 

너무 좋아요 이런 우연

 

공연장 내부는 오래되 보였지만 잘 관리된 느낌이었는데, 전면부 합창석 뒤로 배치된 큰 파이프오르간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파이프 하나 가진데에 프라이드 있을법한 유럽 대형 성당도 저 파이프의 반 정도밖에 없을거같은 느낌. 백파이프의 심장 스코틀랜드라서 파이프 오르간도 신경써서 놓은걸까? 

파이프 오르간이 멋있었던 Usher Hall

 

2,3층 좌석은 이런 느낌의 테라스 형식. 금칠한 월계관 장식이 수수한 공연장에 화려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었다. 

 


공연 시작 시간이 되자 이에 맞춰 지휘자와 조성진이 등장했다. 나는 그냥 그 얼굴을 실제로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뭔가 전설적인걸 오랫동안 듣기만 하다가 실제로 본 느낌이랄까.

그는 다소곳이 쑥스러운듯 인사를 하고 연주를 시작했는데, 좀 샤이해보이는 점이나 음악을 할때는 굉장히 진지한 태도로 임한다는 점이, 이전에 내가 그의 인터뷰나 영상을 본 바로 짐작한 점과 비슷했다. 

 

근데 이 영접(?)의 시간에서 흥미로웠던 점이 두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의 손이 엄청나게 컸다는 점이다. 피아니스트니까 손이 크겠지~라는 생각은 할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코앞 수준의 거리가 아니었는데도 길게 뻗은 손가락이 뚜렷이 보였고 또 예쁘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웠던 사실은.. ㅎㅎ 그는 4악장 내내 한번도 관객석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아주 필사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피아노만을 보거나 지휘자만을 바라보며 연주를 했다. 이것도 샤이한 그 성격인걸까? 이제는 제법 연주경력이 오래되서 익숙하게 관객을 조련(?)한다거나 어색하지 않다는 척(?)을 할수도 있을거같지만, 그렇지 않게 보였다. 근데 그게 되려 진실되어보이고 진정성있어보였다. (몇주 뒤에 랑랑의 피아노 협연을 가게 되는데 거기서 아주 부담스러운 그의 관객 조련과 자신감 뿜뿜한 모습을 보게 되니 배로 비교가 되었고 나는 조성진쪽이 더 좋다고 생각되었다. 아 이미 너무 편애하고 있네)

 

앵콜로는 뭔가 굉장히 고전적인 스타일의 멜로디가 아름다운 작품을 하나 연주해주고 떠났는데 그걸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조성진의 10월 한국 공연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고, 거기에 헨델의 건반모음곡 제 5번이 있다는걸 발견하고 뒤통수에 번개가 꽂힌 느낌이 들어 곧바로 그곡을 찾아 들어봤다. 역시나... 그의 앵콜은 그가 다른곳에서 연주하려고 연습중이었던 곡이었던 것이다. ㅎㅎ 흥미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연주자나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이 질문에 답을 얻을 날이 올까. 

 

공연이 끝나고 그가 인사를 할 때 나는 사진 한장 찍을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러고싶지 않아서 그냥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만 열심히 쳤다. 왠지 그가 그렇게 사진찍히는걸 달가워하지 않을거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나혼자 생각이 많았나 ㅎㅎ

 

 

 

사담. 

전반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공연이었지만 관객 매너가 평균 이하였다. 우선 앞줄의 누군가에게서 핸드폰 메시지 알람이 울렸는데, 그래 뭐  그럴수있지 하고 넘기기에는... 악장 하나하나가 끝날때마다 박수가 터져나오는 읭?스러운 관객매너. 물론 황제 1악장이 벅차오르긴 하지.. 하지만 악장간 박수는 내 인생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주 날것의 매너였다. 그리고 너무 감격해서 박수를 쳐버렸다고 해도 보통은 주위 다른 사람들이 안치니까 금방 사그라드는데, 이날은 아주 오랫동안 그 박수가 이어졌으며, 2악장, 3악장... 계속해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아아아....

물론 악장간 박수를 치지 말라는 법은 없고 개인적으로 감격해서 박수가 절로 터져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수가 공연 매너로 금기된 이유는 박수가 공연의 흐름을 아주 크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박수가 나오면 지휘자는 그 다음 악장을 이어갈 박자를 놓치지 십상이고 집중력도 깨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