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2] 은행 계좌 열기 (feat. UBS, UBS Twint)
현지 생활을 시작하려니 은행계좌가 절실해졌다. 갓 도착했을때는 한국에서 환전해서 가져온 작은 단위의 (CHF 10, 20)현금을 쓰거나 한국체크카드를 썼었는데 스위스 물가를 생각하니 수수료가 작더라도 계속 쌓이니 커져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건 급여를 받기 위해서 은행계좌가 필요했다.
어느 은행을 고를지 서치도 해보고 주변에도 물어봤는데, 스위스 사람들은 칸톤별로 운영되는 은행 (지역농협같은 느낌)이나 PostFinance라는 일종의 우체국은행(?) 느낌의 중소형 은행을 많이 쓰는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한 독일 친구는 자기 조건이 맞는 프로모를 딱 찾아서 Credit Suisse에서 계좌를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UBS에서 계좌를 열였는데, 그 이유는
1. 취리히 시내에 널린게 UBS 지점과 UBS ATM이었다. 편리함이 최우선
2. 유명함... ? 뭔가 암흑가의 비밀계좌 느낌으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유명하긴 한거니까
3. 한국에서 송금을 할때나 받을때, 스위스 어떤 은행을 쓰더라도 UBS를 거쳐서 환전이 진행된다고 들었다. 그래서 뭔가 UBS 계좌가 있으면 그 프로세스가 빠르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저러해도 제일 큰 이유는 첫번째, 접근성이었다.
은행 계좌를 열때 필요한 준비물로
1) 여권
2) Kriesburo에서 residence 등록을 하고 받은 종이 -- residence ID가 곧 나올거라는걸 증명하는 일종의 residence ID의 임시적 대체 서류
3) 직장 계약서
가 필요하다고 해서 카피를 만들어 들고갔다.
구글링 해서 본 어느 포스팅에서 예약 없이 워크인으로 계좌를 열 수 있다고 보고 그냥 시티에 있는 아무 UBS 브랜치에 들어갔는데, 리셉션에 계시던 직원분이 예약을 해야한다고 하셨다. 어떻게 하는건데요 예약... 하고 올려다보니 프로처럼 어딘가로 전화를 해주시더니 예약을 잡아주셨다. 빳빳하고 비싸보이는 종이에 몇월 몇일 몇시에 이 지점에 가라고 일러주셨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 약속된 지점을 방문했다. 취리히 올드타운에는 큰 UBS 지점이 두군데 있었는데, 내가 이날 방문한 곳은 본점이었다. 스위스 은행은 뭔가 남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무언가가 달랐다. 일단 입구 대문 안에 보안(?) 담당 직원분이 한두명 있고 그분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어리둥절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엄청 널찍한 대리석 로비가 보이는데, 사람이 거의 없었고 미술관처럼 큼직한 그림들이 턱턱 걸려있었다. 우리나라 은행처럼, 들어갔을때 앉아 기다리는 손님들이나 바빠보이는 행원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보안직원분은 나를 불투명한 유리로 된 작은 룸으로 안내해주시고 곧 담당자가 올거라고 일러주셨다. 이래서 로비에서 아무도 안보였던 거구나. 아니 근데 저는 큰 돈 가지고 온거 아니고 그냥 계좌 열러 왔는데요... 부담감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몇분 되지 않아 담당자가 들어왔다. UBS는 은행원을 외모순으로 뽑나 싶을 정도로 금발에 이쁜 젊은 언니가 들어왔다. 아마 언니가 아닐거다, 그치만 이쁘면 언니니까.
담당자 언니는 내가 챙겨온 서류를 확인하고 테이블 옆에 비치된 엄청나게 큰 모니터에 계좌 종류를 설명해주시고는 은행기록이 없는 뉴비로서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 정보도 안내해주었다. 나는 딱히 프로모에 해당되는 점이 없어서 별다른 혜택 없이 은행계좌를 열었고, 아 당연히 스위스니까, 공짜는 없지^^ 계좌유지비가 있었다. 1년에 CHF 50 정도라고 들었고, 이건 한 한두달 뒤쯤 은행계좌에서 스르륵 빠져나갔던거같다. 이건 미국에서의 경험으로 보아 딱히 놀랄점은 아니었는데, 여기서 아 우리나라같은 은행이 없구나 하고 한국의 서비스 퀄리티를 실감했다: 우리나라 은행은 계좌도 공짜로 열어주고, 10원을 넣어놔도 유지비 받지 않고, 심지어 우수 고객은 ATM이나 이체 수수료도 면제해주니, 아 현금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느낌이다.
스위스도 미국도 계좌유지비를 받지만, 미국은 정말 뱅킹시스템이 정말정말 후지고 느리다 (갑자기 미국은행 욕). 미국에 있을때 내가 썼던 Bank of America 계좌는 매월 꼬박꼬박 들어오는 급여가 없을때 잔고가 현금 1500달러이하로 하루라도 떨어지면 그 달은 20달러?의 계좌유지비를 내야했다. 그 해 한번이 아니고 그 달monthly. 나같은 유학생은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라도 들어와 이 유지비를 피했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거나 1500달러가 없는 사람들은 이 수수료가 무서워서 은행 계좌를 열수도 없겠다 생각했다. 실제로 좀 낮은 급의 슈퍼마켓을 가면 (영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슈퍼마켓에도 급이 있더라) 현금으로 계산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 미국 은행과 마찬가지로 UBS에서도 은행 계좌는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그냥 우리가 아는 보편적인 은행계좌인 Checking account. 입출금이 쉽고 데빗카드debit card (우리나라식으로 말하자면~ 체크카드)에 연결해서 쓴다. 다른 하나는 Savings account로 이름 뜻대로 저축용 계좌다. 입금은 쉽고 출금이 어렵다. 출금시 수수료를 내야한다.. 내 계좌에서 내 돈을 내가 빼겠다는데요! 이점에서 어떻게보면 적금같은 느낌이지만 적금처럼 일정하게 돈을 넣어야하는건 아니다. Savings account는 이렇게 내가 내돈을 묶어버려 강제적 저축을 하는 개념 + 이자를 준다고 한다. 스위스 은행이 이자를 얼마나 줄까 싶냐만은. 나는 그냥 Checking account와 debit card를 열기로 했다.
다른 한가지 더 필요했던건 신용카드. 하지만 나는 스위스에서의 신용 기록이 없고, 내 비자가 일단 1년짜리라 신용카드가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담당자 언니는 prepaid credit card를 추천해줬다. 이것도 한국에는 없는 개념같은데, 돈을 이 카드에 미리 이체시켜놓고 그만큼만 신용카드로 쓰는거다.
아니 그럼 그냥 데빗카드를 쓰지 왜 굳이 돈을 한번 더 옮겨서 prepaid credit card를 쓰냐고 물으신다면...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금융사고에 신용카드가 더 유연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해외에서 결제를 하는 경우 결제취소를 하거나 환불을 해야 할때, 그리고 분실사고 등이 일어났을 때 credit card는 돈이 바로바로 빠져나가는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벌 수 있다. 또다른 이유로는 prepaid credit card를 포함한 credit card는 해외결제 수수료가 1.75%인 반면 다른 카드 (debit card 등)는 수수료가 2%이다. 아참, 해외결제시 현지화폐로 결제해야 싼건 다들 아시죠?
https://www.ubs.com/ch/en/private/accounts-and-cards/creditcards/additional-fees.html
Possible extra charges | UBS Switzerland
www.ubs.com
단, 해외에서 현금 인출을 할 때에는 debit card가 더 저렴하고, 그걸 추천한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The right way to pay abroad
The Spring Break weekend is finally here – time to head abroad! But which card should you use when shopping?
www.ubs.com
이렇게 결정이 끝나자 담당자 언니가 내게 서류를 카피해도 되겠냐고 묻고는, 뒤편에 있는 수납장 아랫단을 열어 프린터 뚜껑을 열어 카피를 시작했다. 평범한 수납장인줄 알았는데, 아주 치밀하게 미니멀리즘으로 딱 맞게 낭비하는 공간 없이 프린터가 쏙 들어가게끔 만들어진 수납장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조차도 굉장히 스위스다웠다. 어찌저찌 은행업무는 이걸로 끝이었다.
은행 방문 이후, 7-14일동안 은행 계좌 관련 정보, 온라인 뱅킹 관련 정보, 데빗카드, 그리고 prepaid credit 카드가 하나 하나 차례 차례 따로 따로 집주소 우편함으로 메일로 배달되었다. 이래서 그렇게 집주소에 집착했나.
그 이후 과정은 쉬웠다. 은행 웹사이트를 열고 메일로 온 코드 정보를 입력한 뒤 내 계좌가 등록된걸 확인했다. 메일에 딸려온 정보에 따라 UBS 앱도 설치하고 Twint UBS라는 앱도 따로 설치했다. Twint는 계좌이체 앱인데, 온라인 구매를 할때 신용카드 정보를 쓸건지 Twint로 페이할건지 옵션이 있는걸로 보아 페이팔같기도 하다. 그리고 또, 애플페이같기도 한게, 우편서비스 수수료 같은걸 낼때 그쪽에서 네모난 QR코드같은걸 내밀면서 결제해달라고 하는데 그때 이 Twint 앱을 켜서 코드를 찍으면 결제가 완료된다.